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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가을 블로그

2024년 09월 17일--views

나와 가족

가족이라는 렌즈로 나를 들여다보기

스스로에 대해 생각할 시기가 돌아왔습니다. 최근에는 좀 바빴죠. 올해 1학기로 학교를 마쳤고 (3년 만에 조기졸업 나이쓰) 학교를 마치자말자 사이드 프로젝트를 시작하여 “니가 선택한 길이다, 악으로 깡으로 버텨라”를 계속해서 되뇌인지 3개월이 지났습니다. 올해 2024년 남은 시간은 좀 글을 열심히 쓰면서 지내려고 합니다. 개발적으로 쌓아놨던 것들을 정리할 필요가 있죠. 올해 잡은 키워드가 “정리”인데 너무 또 어질러놓은 것 같아 뜨끔하네요.

이 글을 쓰게 된 계기가 또 있습니다. 글또라는 개발자 글쓰기 모임에 들어가기 위함이죠. 그 모임이 제 지향점과 잘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글을 쓰도록 하는 장치로서 글쓰기 모임에 들어가고 싶었던 마음은 죽 있었으니.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땅바닥에 너불러진 잡동사니를 치우려면 걔네들을 어디다가 둘 건지부터 결정해야 합니다. 일단 옷은 빨래통에 넣고, 쓰레기는 휴지통에 버리고, 립밤은 수납장에 넣고. 그런데 지금 제 머릿속엔 서로 엉겨 있어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기괴한 물건밖에 없네요. 쓰레기통도 수납장도 없어서 공간도 우선 확보해야 합니다. 너저분한 걸 분류하느라 더 너저분해질 순 있겠지만, 그래도 한걸음 내딛어 봅시다.

어느 가족사진
Photo by Hoi An Photographer on Unsplash

소통 요소로서의 가족

소통을 하는 이유는 자신과 상대의 입장 차이를 이해하고 할 수 있는 일과 그렇지 못한 일을 정리하여 다음 액션을 정하기 위함입니다. 당사자들 간 이해가 필요합니다. 그 사람의 구성요소를 알아야 합니다.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도 필요하고 나 자신을 이해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사람의 주된 요소 중 하나는 그의 가족입니다.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 가족이라는 요소는 결코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 가족이란 그 사람과 가장 끈끈하게 엮여있는 속성이지만 동시에 가장 깊숙히 감추어져 있는 속성이기도 합니다. 드러나기 쉬운 속성인 지위, 재력, 외모, 직업, 말투도 중요하지만 어린 시절이나 가족과의 관계까지 알아야 그 사람을 온전히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의 저자는 취재하는 인물과 본인의 가정환경부터 설명함으로써 독자들에게 효과적으로 정보를 전달합니다.

소통을 하려면 서로의 이해가 수반되어야 한다? OK. 어떤 한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그 사람의 가정사를 알아야 한다, 음… OK. 그러나 소통의 전제조건으로서 그 사람의 가정사를 알아야 한다? 오우. 이는 좀 급진적인 주장입니다. 하여튼 저도 이전에 그렇게 생각해보진 않았습니다. 당장 회사에서 집안 사정을 아는 동료는 정말~ 로 손에 꼽기도 하고요. 아예 없어도 이상한 게 아니죠. 2-3년 간 같이 일을 해도 서로를 모를 수 있네요.

가족 이야기는 프라이버시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숨기고 싶은 본인만의 비밀이 있습니다. 이 비밀이 까발려진다면 수치심이 들 것이고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껴질 것이고 불안정한 시스템을 신뢰하지 못할 겁니다. 집안 사정을 공개했을 때 손해볼 가능성(상대가 날 색안경을 끼고 볼 가능성이나 약점을 노출한다는 느낌)이 크기 때문에 굳이 공개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겠습니다. 이런 분위기는 만연하기 때문에 당근으로 만나는 친목 모임에서 서로의 가정사를 까발리는 희한한 풍경은 절대 없겠죠. 궁금할 수는 있겠지만 궁금한 거 자체가 실례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거고, 깊은 이야기 자체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요.

가정사 이야기가 취미나 MBTI처럼 가볍게 이야기되는 분위기였으면 좋겠습니다. 굉장히 힘들겠지만 저부터 시작해보겠습니다.


아픈 엄마

저는 막둥이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넷째 여동생의 오빠가 될 수도 있었습니다. 자연분만을 하려다 일이 잘못되어 애기는 뱃속에서 죽고 엄마도 죽다 살아났습니다. 그 과정에서 엄마의 건강은 완전 나빠져 집 밖에 잘 나가지를 못했습니다. 저는 어린 마음에 왠지 혼자서 잘 해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생겼습니다. 기억나는 가장 첫 칭찬은 옷을 올바로 입었을 때입니다.

이 느낌은 성향으로도 발전했습니다. 나만의 공략법을 만들어 시도하는 걸 좋아했습니다. 지구력이 나쁘지 않았던 터라 술래잡기할 때 타겟을 괜히 왔다갔다 하는 것보다 한 애만 죽어라 쫓아다니면 좀 느릴 수는 있어도 100% 확실한 방법이었습니다. 하나의 현상을 집요하게 분석하는 걸 좋아했고, 남들이 시도하지 못한 방법을 발굴해내는 것도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물어보는 것이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착한 아이 콤플렉스도 있어서 누군가에게 야단을 맞으면 심정이 굉장히 비통했습니다. 버스 기사 아저씨가 자리에 앉아있어라 라고 하는 게 야단처럼 들려서 (그렇게 듣고 싶지 않은데도) 눈물이 나왔습니다. 당연히 질문해야 할 영역을 궁금하지 않다는 물감으로 덧칠했습니다. 사회성이 좀 떨어졌죠.

엄마에겐 죽을 고비가 또 찾아왔습니다. 제가 중학생 때에는 뇌출혈로 쓰러졌어요. 오른쪽 반신의 감각이 둔해졌고 말도 어눌해졌지만 무엇보다도 중환자실 면담때 살기 싫다는 절규가 뇌리에 박혔습니다. 그 전까지만 해도 등산도 매일 갈 정도로 건강이 돌아오고 있었는데 말이죠… 삶과 죽음에 관한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공부는 적당히 잘 했지만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최상위권으로는 갈 수 없다는 생각에 흥미도 떨어졌고, 의미를 찾아나서는 생각들을 많이 했어요. 수능을 열심히 준비하고 좋은 대학으로 가는 게 무의미하다 느껴져 고등학교는 중퇴를 했습니다. 일기를 쓰기 시작한 것도 그즈음이었어요.

엄마는 다른 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직장암이 늦게 발견되어 4년 전에 돌아가셨어요. 요즘 부산으로 내려 가고 싶은 이유 중 절반은 혼자 부산에 있는 아빠가 신경쓰여서이기도 하죠.


부족한 사회성은 집 밖에서 지내면서 좀 나아졌습니다. 군대에서 별의 별 희한한 동기들을 만났고, 독립영화배급사에서 친한 누나들과 일하면서 “일이란 무엇인가?”라는 격정적인 폭풍이 휩쓸며 지나갔고, 운이 좋게 첫 회사에 들어갔는데 사람들의 성향이 잘 맞아서 재밌게 일 하고 있습니다. 연인과의 만남을 통해 인간적으로 좀 성숙하기도 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엄마는 내 안에서 살아있으면서 영향을 줍니다. 저는 그 영향을 인지하고 나름대로 삶을 풀어나가려고 하고 있어요.

  • 착한아이 콤플렉스와 같은 성향: 뭔가 적극적으로 하려고 하고 좀 굳은 일을 도맡아야 할 것 같다는 느낌은 항상 듭니다. 그러나 의식적으로 정신을 가다듬고, 내가 책임질 수 없는 챙김은 하지 않으려고 해요. 선을 의식적으로 지키고 있습니다. 선을 지키는 것이 곧 나를 지키는 길…
  • 안되는 것 붙잡고 끙끙대기: 요즘은 질문 잘 하는 거 같아요. 일은 함께 하는 거니까… 삶은 더불어 사는 거니까… 그런데 하여튼 질문을 할 때에도 의식적으로 해야 합니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혼자서 끙끙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누군가에게 의지는 잘 안하는 것 같아요. 사람이라 의지가 필요하긴 할텐데…
  • 회의주의: 겉으로 봤을 때 티는 잘 안나지만, 제 속엔 회의주의로 똘똘 뭉쳐있어요. 그렇다고 그게 부정적인 느낌은 아니고 낙관적 허무주의랑 비슷한 느낌일런지요. 겉으로 드러나는 것보다 좀 더 본질적인 걸 추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당장 내일 차에 치여 내 몸이 고깃조각이 되어 흩뿌려진다고 해도 후회없도록 사는 게 맞지 않을까 합니다. “지금 할 수 있는 걸 하자” 라고 자주 되뇌이기도 하구요.
  • 적당한 현대 의학: 엄마는 현대 의학을 극혐했는데, 나는 그냥 의사 말을 적당히 잘 듣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엄마가 고혈압이었는데 혈압약을 안먹다가 뇌에서 피슈우웃… 해버린 거니까요. 혈압은 대개 본태성(유전)이라 저도 젊은 것 치고 혈압이 좀 있어서 약을 챙겨먹고 있습니다. 갑자기 길 가다가 쓰러지면 억울할 거 같아요. 안쓰러질 수도 있었는데! 하면서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감기에 걸리는 등의 잔병치레는 죽어라 병원에 가지 않습니다. 안가는 게 습관이 되긴 했죠.

여기까지, 아픈 엄마와 관한 이야기입니다.


타인이 본 나의 가족

추석이라 최근에 부산에 내려갔다 왔는데요, 초딩 때부터 친했던 친구와 오랜만에 밥 한끼 했습니다. 알고보니 그 친구도 글 쓰는 걸 좋아한다고 하더라구요. 무려 브런치 작가에 글은 100개가 넘었습니다. 2년 전 쓰여진 글 중에는 나에 대한 글도 하나 있더군요. 그런데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들을 거기서 짚어줬습니다. 바로 자유로운 집안 분위기.

우리 집이 특이하다고 평가받는 이유는 엄마가 아픈 것도 있겠지만 평균에서 훨씬 벗어난 집안의 자유로움이었습니다. 부모님은 제 장래에 관해서 아무런 관여를 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내가 하고 싶은 것에 집중했고 나에게 뭔가를 시키는 것이 없었습니다. (집안일은 많이 시켰습니다). 나만의 공략법을 만드는 성향은 엄마가 아파서가 아니라 자유로운 분위기 때문이었을까요? 자식들에게 자유를 준다는 건 그만큼 책임을 물린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니가 알아서 잘 해봐라”는 메시지는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나왔다 해도 이상하지 않네요.

엄마가 아팠던 일들, 일찍 돌아가신 일은 친구가 보기에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을 지도 모릅니다.


부모 형제만이 가족은 아니다.

이번 글에선 가족이라는 렌즈를 통해서 저를 돌아봤습니다. 글이 글또의 입시 전형으로 쓰인 만큼, 블로그를 이리저리 많이 홍보하는 만큼, 이 글도 보여질 기회가 많아졌습니다. 오히려 선입견이나 불편한 마음이 생겨 소통을 더 어렵게 할 수도 있겠죠. 불편한 마음이 끝까지 갈 수도 있습니다. 나는 까발렸지만 상대는 숨기는, 불균형의 지속.

그러나 결혼할 때 서로의 집안 사정을 공개하는 것처럼 결국엔 알 것들이고 마주칠 것이라 굳게 믿습니다.

부모와 태어남이란 주어지는 것이고 거기에 딱히 이유는 없습니다. 자칫 결정론처럼 보일 수 있죠. 이런 환경 밑에서는 이런 아이가 자란다. 그런데 가족은 부모 뿐만이 아니라 배우자와 자식도 있습니다. 내가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아 내 핏줄을 이어나갈 수 있습니다. 가족이 소통의 중요한 요소라고 했었는데, 거기엔 배우자와 자식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결혼과 자식 농사를 어떻게 하냐에 따라서 나라는 사람이 어떻게 설명될지 결정될 수도 있다는 것이죠.

한 사람의 끝을 보려면 결혼하고 자식까지 낳아야 하지만, 이미 자기 대에서 끝을 낼 각오를 지닌 사람들도 많이 보여서 안타까운 마음이 있습니다. 저는 아기를 낳고 싶습니다. 어느정도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식을 어떻게 키울지 상상하곤 합니다. 일단 돈이라는 종교에 우리 아이가 휘둘리지 않았으면 좋겠고, 내가 자랐던 환경과 마찬가지로 자유로운 분위기를 내되, 조금 더 쾌활한 분위기를 내고 싶습니다. 상상은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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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년 여기애도라는 프로젝트에서 진행했던 인터뷰에 참여했어요. 상실을 주제로 인생을 한번 쑥 훑는데, 가족 이야기도 많네요. (링크)